나만의 문체 찾기: '당신처럼' 쓰는 작가는 아무도 없도록
김훈의 글에서는 칼날처럼 단단한 긴장감이, 한강의 글에서는 서늘하고 투명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이름표를 보지 않아도, 단 몇 문장만으로 누구의 글인지 짐작할 수 있는 작가들을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작가 고유의 향기와 개성을 드러내는 글의 결을 '문체(文體)'라고 합니다. 문체는 단순히 글을 꾸미는 기술을 넘어, 작가의 사상과 세계관, 고유한 리듬감이 녹아있는 '영혼의 지문'과도 같습니다. 수많은 작가들 속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독자에게 '대체 불가능한 작가'로 각인되기 위해 나만의 문체 찾기는 모든 작가 지망생의 숙명이자 목표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나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문체는 타고나는 재능일까요? 아닙니다. 문체는 꾸준한 훈련과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가는 '건축물'에 가깝습니다. 지금부터 당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는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방법을 안내합니다.
1. 위대한 작가의 어깨 위에서 시작하기: 필사와 분석의 힘
모든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됩니다. 위대한 화가들이 거장의 작품을 모사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찾았듯, 작가 역시 위대한 문장들을 베껴 쓰며 글의 감각을 익혀야 합니다. 이를 '필사(筆寫)'라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따라 쓰다 보면 내 개성을 잃고 그 작가의 아류가 되는 것 아닐까?'라고 걱정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합니다. 필사의 진정한 목적은 흉내가 아니라 '체득'에 있습니다. 건반을 수없이 두드리며 손가락이 음계를 외우듯, 좋은 문장을 직접 타이핑하고 손으로 써 내려가며 문장의 호흡, 단어의 질감, 리듬의 파동을 몸으로 느끼는 과정입니다. 이는 머리로만 아는 글쓰기 스타일 이론을 온몸의 감각으로 흡수하는 가장 효과적인 훈련법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기계처럼 베껴 쓰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필사에서 더 중요한 단계는 바로 '분석'입니다. 문장을 옮겨 적으며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 어휘: 왜 작가는 수많은 단어 중에 하필 '이 단어'를 선택했을까?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무엇일까?
- 문장 구조: 왜 이 문장은 짧고 간결할까? 왜 저 문장은 여러 겹으로 길게 이어질까? 문장의 길고 짧음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어떠한가?
- 비유와 묘사: 이 비유는 왜 참신하게 느껴질까? 어떤 감각(시각, 청각 등)을 자극하여 묘사하고 있는가?
- 문장 부호: 쉼표의 잦은 사용, 혹은 의도적인 생략이 주는 효과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김훈 작가의 문장 "칼로 베어낸 듯 단호한 문장이 유명하다"를 필사하며, '왜 '자른 듯'이 아니라 '베어낸 듯'일까?', '어떤 조사를 사용해서 이런 속도감을 만들었을까?'를 분석해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적인 분석 과정은 당신이 막연하게 '좋다'고만 느꼈던 문장의 비밀을 해부하여 그 기술을 당신의 것으로 흡수하게 돕습니다. 여러 작가의 문장을 필사하고 분석하다 보면, 당신의 무기고에는 다양한 문장 구사 기술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이는 훗날 당신만의 문체를 구축할 가장 든든한 자산이 됩니다.
2. 나만의 목소리 실험하기: 어휘, 문장, 리듬의 변주
위대한 작가들의 기술을 충분히 흡수했다면, 이제 그것들을 재료 삼아 당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실험'을 시작할 차례입니다. 이 단계는 정답이 없는 놀이와도 같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어떤 것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고, 어떤 목소리를 낼 때 가장 '나다운' 글이 되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어색하고 과장된 문장이 나와도 괜찮습니다. 실험실에서의 실패는 모두 성공을 위한 데이터가 됩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연습을 해볼 수 있습니다.
- 의식적인 어휘 확장: 평소 자신이 즐겨 쓰는 단어 목록을 만들어보고, 그 단어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유의어 사전을 찾아보며 같은 의미의 다른 질감을 가진 단어들을 수집하고, 당신의 글에 어울리는지 실험해보세요. 좋아하는 장르를 벗어나 과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도 새로운 어휘를 얻는 좋은 방법입니다.
- 다양한 문장 구조 연습: 하나의 간단한 문장을 정해놓고, 최소 5가지 이상의 다른 구조로 변주해보는 훈련입니다. 예를 들어, '소녀는 언덕에 올랐다'라는 문장을 '가파른 언덕을, 소녀는 숨을 헐떡이며 올랐다' (도치), '언덕에 오른 소녀의 눈에 바다가 들어왔다' (다른 정보와 결합), '소녀가 언덕에 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의문문) 등으로 바꾸어보는 것입니다. 이 연습은 당신의 문장이 단조로운 리듬에 갇히는 것을 막아줍니다.
- 다양한 톤앤매너 실험: 동일한 사건이나 장면을 전혀 다른 톤으로 묘사해보세요. 예를 들어, '연인과의 이별 장면'을 지극히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한 번, 지독하게 슬프고 감상적으로 또 한 번, 심지어는 냉소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다시 한번 써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당신이 어떤 감정이나 분위기를 묘사할 때 가장 큰 강점을 발휘하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적인 실험과 놀이를 통해 당신은 비로소 모방의 단계를 넘어, 자신만의 목소리를 조율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창조의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3.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는 과정: 꾸준한 쓰기와 퇴고
나만의 문체는 어느 날 '유레카!'처럼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꾸준히 쓰고 다듬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가는 것입니다. 앞선 단계에서 배운 기술과 실험을 통해 얻은 감각을 바탕으로, 이제는 매일 꾸준히 쓰는 '성실성'과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고쳐나가는 '퇴고(退稿)'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체는 결국 당신의 생각과 삶이 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기에, 절대적인 집필량이 쌓이지 않으면 결코 단단해질 수 없습니다.
특히 '퇴고'는 당신의 문체를 확립하는 가장 결정적인 과정입니다. 초고가 머릿속의 생각을 쏟아내는 과정이라면, 퇴고는 그 원석을 '나다운' 보석으로 세공하는 작업입니다. 퇴고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 이것이 진정 '나의 목소리'인가?: 혹시 내가 존경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무의식적으로 흉내 내고 있지는 않은가? 더 솔직하고 진실한 '나다운' 표현은 없을까?
- 더 효과적인 단어는 없는가?: 내가 쓴 단어들이 진부하거나 상투적이지는 않은가? 이 감정과 상황을 표현할 더 정확하고 선명한 단어는 없을까?
- 문장의 리듬은 자연스러운가?: 소리 내어 글을 읽어보자. 숨이 차거나 삐걱거리는 부분은 없는가? 문장들의 길이가 너무 단조롭거나, 혹은 너무 복잡하지는 않은가?
퇴고는 단순히 맞춤법을 교정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자신의 글을 낯설게 바라보며,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모호한 표현을 선명하게 벼리는 과정입니다. 이 고통스럽고 더딘 과정을 반복하며 당신의 글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당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은 서서히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문체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쓰기와 퇴고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임을 기억하세요.
결론: 당신의 삶이 곧 당신의 문체입니다
문체 찾기의 여정은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과 같습니다. 위대한 작가에게서 기술을 배우고(필사), 다양한 표현을 실험하며(연습), 꾸준한 쓰기와 성찰을 통해(퇴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길고 성실한 과정입니다. 화려한 기교나 어려운 단어의 조합이 좋은 문체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각, 당신이 사용하는 독특한 언어 습관, 당신의 삶을 통해 얻은 진솔한 생각이 녹아있는 글이 바로 당신의 문체입니다. 그 누구도 당신의 삶을 똑같이 살아낼 수 없듯, 그 누구도 당신처럼 쓸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가장 닮고 싶은 문체를 가진 작가는 누구인가요?
나만의 문체 찾기,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제 글이 특정 작가를 너무 따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어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A1: 한 작가에게만 너무 깊이 빠져있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의식적으로 독서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간결한 문체의 작가를 좋아했다면, 일부러 화려하고 만연체의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해보세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글을 접하고 흡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영향력이 희석되고, 여러 스타일이 당신 안에서 융합되며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하게 됩니다.
Q2: 좋은 문체가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화려하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써야 하나요?
A2: 아닙니다. 좋은 문체란 '효과적인 문체'를 의미합니다. 즉, 작가가 의도한 분위기와 메시지를 독자에게 가장 잘 전달하는 문체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건조하고 짧은 문장은 그 나름대로 최고이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길고 환상적인 문장 역시 그 나름대로 최고입니다. 중요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에 가장 어울리고 당신 자신에게 가장 정직한 '진실성'입니다.
Q3: 문체를 빨리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은 없나요?
A3: 안타깝게도 지름길은 없습니다. 문체는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는 것과 같아서, 절대적인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일한 '비슷한' 지름길이 있다면, 읽고 쓰는 양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것입니다. 단기간에 많은 글을 읽고, 많은 글을 쓰다 보면 그 과정에서 당신의 목소리가 더 빨리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양이 쌓이면 질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